전체 글24 통치체제의 재편성 - 부역체제 조선초기의 경제구조는 민생안정과 더불어 국가수입을 증대시켜 안정된 재무국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양입위출, 즉 국가수입을 헤아려 일부를 저축하고 나머지를 국가 및 왕실경비로 지출했는데, 세조 때부터는 지출을 먼저 정하고 그에 따라 수입을 정하는 회계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를 횡간이라고 했다. 국가의 지출은 관원의 녹봉, 국가의 제사, 군량미, 의료비, 빈민구제비 등에 지출되었다. 국가수입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전조와 전세, 공납 그리고 군역이었다. 먼저 전조는 공전에서 1결당 최고 30두를 받는 것으로 이는 대략 수확의 10분의 1을 표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흉년이 들면 그 정도에 따라 세액을 낮추었다. 10분의 1세는 고려시대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것이지만, 고려말 이후로 전제개혁과 양전사업 그.. 2024. 9. 23. 통치체제의 재편성 - 관료기구의 재정비 1. 중앙통치기구조선왕조는 개국 직후부터 고려와 다른 독자적인 통치규범을 만들고 이를 표준으로 하여 한층 진보된 정치를 운영했다. 최초로 통치규범을 만든 이는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으로서 그는 중국의 이상적인 정치규범인 를 참고하여 과 을 편찬했는데, 이를 모체로 하고 그 후 시행된 법규를 참고하여 성종 5년(1474)에 만세불변의 헌법을 만든 것이 이다. 조선왕조 권력구조의 특색의 군신공치의 이념 아래 권력분산과 권력견제에 역점을 두어 정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존중하는 민본정치를 구현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에 왕권을 제약하고 있던, 2품 이상 재상들의 합의기관인 도평의사사를 폐지하고, 대간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관리에 대한 임명동의권인 서경권을 약화시켜,.. 2024. 9. 22. 조선왕조의 성립 - 영토확장과 대외관계 1. 영토확장과 명과의 관계새 왕조는 건국 직후부터 영토확장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조선초기 지식인들은 우리나라 본래 만주를 포함한 '만리의 대국'이라고 생각하고, 지도나 지리지를 편찬할 때 만주를 우리 국토에 포함시켰다. 지리지나 의 서문에 그런 표현이 보인다. 말하자면 잃어버린 만주땅에 대한 꿈을 잃지 않으면서 국토확장과 대외관계를 진취적으로 추진했다. 우선, 태조는 정도전을 시켜 함경도지방의 성보를 수리하고 여진족과 주민들을 회유하여 행정구역으로 편입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 우왕 때 출정했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요동정벌운동을 다시 추진했다. 위화도회군은 전략상 후퇴였지 요동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국 직후 정도전, 남은 등이 주동이 되어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투방법을 개발하.. 2024. 9. 20. 조선왕조의 성립 - 국가체제의 완성 1. 태종과 세종태조는 재위 7년 만에 일어난 왕자들의 권력투쟁에 실망하여 물러나고, 그다음 태조의 둘째 아들로서 왕위에 오른 정종(1398~1400)도 2년 만에 물러나, 왕위는 태조의 다섯째 아들 방원에 돌아갔다. 18년간에 걸친 태종(1400~1418)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태조의 다섯째 아들인 태종은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고 정몽주를 제거하는데 앞장서는 등 개국에 공로가 크고 능력도 있었으나, 이성계의 신임을 얻지 못하여 왕위 계승에서 탈락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그는 이복동생으로 세자가 된 방석과 세자를 보호하고 있던 정도전 일파를 무력으로 처단하고, 이어 친형인 방간의 도전을 물리친 후 정종을 압박하여 왕위를 물려받았다. 태종은 왕위에 오른 후 태상왕인 이성계와 심한 갈등을 일으켰으나, 왕권을.. 2024. 9. 19. 조선왕조의 성립 - 새 국호, 새 수도 1. 새 국호 태조 이성계에서 제9대 성종(1469~1494)에 이르는 15세기 100년간은 새 국가의 이념과 통치질서가 틀을 잡아가던 시기였다. 태조(1392~1398) 때는 정도전, 조준, 남은 등 개국공신이 실권을 쥐고 국호를 제정하고 통치이념을 정비했으며, 태조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는 등 새 국가의 기초를 다졌다. 특히 정도전이 왕조의 설계자로서 큰 역할을 맡았다. 국호는 고조선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담은 조선과 이성계의 고향인 화녕이라는 두 개의 국호를 만들어 명나라 황제와 상의하여 조선으로 정했다. 조선은 단군조선에서 역사의 유구성과 천손후예의 자부심을 찾고, 정전제와 8조교를 시행하여 조선을 도덕적 이상국가로 만든 기자조선에서 도덕문명의 뿌리를 찾아 이를 계승한다는 역사계.. 2024. 9. 19. 조선왕조의 성립 - 이성계 일파의 역성혁명 1. 우왕대 권신의 발호와 위화도회군(1388) 개혁군주 공민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우왕(1374~1388)은 공민왕과 신돈의 비첩인 반야 사이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뒷날 이성계 일파는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신돈의 아들이므로 진짜 왕 씨가 아니라고 하여 폐위시키고 창왕(1388~1389)을 옹립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공민왕은 다섯 명의 부인을 두었으나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생부터 의심을 받은 우왕은 권신 이인임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는데, 공민왕의 개혁에 반발하는 권문세족의 횡포와 보수반동을 제어하지 못했다. 권력은 이인임, 염흥방, 임견미 등에게 돌아가고, 이들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 특히, 토지겸병이 자행되어 부자는 산천을 경계로 할 만큼 방대한 농장을 점유하고, 가난한 사람은.. 2024. 9. 16. 이전 1 2 3 4 다음